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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고대사 전공자 자릴가시노바 교수 모스크바서 별세

    [부고] 한국고대사 전공자 자릴가시노바 교수 모스크바서 별세

    © Photo: Anastasia Sadokova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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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기고 : 키릴 예르마코프] 지난 3일 러시아 한국민족학 전문가이자 한국고대사 연구자인 로자 자릴가시노바(1931 ~ 2017)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

    자릴가시노바 교수가 한국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40년대 말 모스크바국립대 역사학부 시절부터였다. 그녀가 공부했던 과에는 학생들 수가 6명에 불과했다. 모스크바대 역사학부 최초로 구성된 한국사 전공 학부생 그룹이었다. 당시 (남북한을 불문하고) 한국에 대한 소식도 부족하고, 세계 극빈국 중 하나였기 때문인지 한반도 역사를 배우고 싶어하는 신입생이 별로 없었다. 차후 자릴가시노바 교수는 ‘학생들 앞에서 열정적인 발언을 한 미하일 박 교수의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한국사를 선택했다고 회상했다. 미하일 박(1918 ~ 2009) 모스크바국립대 교수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한문 원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셨다. 러시아에서 한국고대사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그는 자릴가시노바의 스승이자 지도교수였다.

    박 선생님을 따라 자릴가시노바 교수는 한국고대사, 특히 고구려 역사를 연구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그 수년간 노고의 결과물로 《고대 고구려인: 한민족의 민족사 일환으로》(1972년 출판) 와 《비문자료로 본 한국인의 민족형성(ethnogenesis)과 민족사: 광개토왕비를 중심으로》(1979년 출판) 등 2권의 저서가 빛을 보게 되었다. 후자의 저서에서는 서구 한국학 사상 최초로 광개토왕비를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광개토왕비문 원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까지 했다. 자릴가시노바 교수가 저술한 서적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으므로 심지어 좁고 좁은 학계에서마저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은 점이 유감으로 남는다. 그녀가 남긴 논저에는 동북공정이 대두되기 훨씬 이전에 고구려 역사는 한국민족 역사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주장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자릴가시노바 교수는 한국역사만을 공부한 것이 아니었다. 1954년 모스크바대 역사학부를 마친 뒤 소련과학원 산하 민족지학연구소(현 러시아과학원 산하 민족학.인류학 연구소의 전신) 대학원에 진학해 거기서 평생을 근무했다. 그 연구소에서 사학과 동시에 민족학 연구를 병행하며 한국인의 문화와 풍습, 의례 그리고 전통 의식주 등을 탐구했다.

    무엇보다도 (구소련에 거주하는 재외동포인) 고려인의 정신 및 물질문화 연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만하다. 일생 동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밀집거주지역에 10여 차례 이상 방문해 그들과 함께 기거하면서 고려인에 관한 독특한 민족학적 자료를 수집하며 탐사했다.

    또 민족학 연구결과를 학술지에 발표하여 러시아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우기도 했다. 상기 2권의 단행본 외에도 100여 편 이상의 한국역사, 민족학, 문화 등에 대한 논문을 남겼다.

    자릴가시노바 교수는 뛰어난 연구자이면서도 훌륭한 교육자이기도 했다. 1974년도부터 그는 약 35년간 모스크바대 아시아 및 아프리카 단과대학(모스크바대 역사학부 및 어문학부의 동양학 계열 토대로 1956년에 설립된 학부)에 겸직하면서 강의했다. 장차 연구원, 외교관 혹은 언론인이 될 학생들이 청강한 자릴가시노바 교수 담당 과목 중 한국 고대중세사, 한국 민족학, 한국문화의 역사, 한국의 종교역사 등이 있다. 그녀의 강의는 굉장히 흥미로웠고 한국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는 정도를 초월해 학생들에게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한 관심, 애정 그리고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

    자릴가시노바 교수를 한번이라도 뵐 기회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부생 및 신진학자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배려심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대화 스타일은 친절하며 상대방을 존중하는, 전혀 권위주의적이지 않은 태도를 지녔다고 한다.

    현재 자릴가시노바 교수의 제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인정받는 전문가로 자리잡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학문과 교육에 몰두해 있으며, 다른 나머지는 공무원이 되었거나 기업 또한 언론매체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 간 협력과 우호적 관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상당부분 로자 자릴가시노바 교수의 학술 및 교육 활동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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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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