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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의 어머니(성혜림) 사랑은 무척 애틋했다

    [단독] "내가 만난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의 어머니(성혜림) 사랑은 무척 애틋했다" (2)

    © AP Photo/ Ahn Young-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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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욱
    김정남 피살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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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성혜림은 김정남을 낳은 직후 모스크바로 온 것으로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남은 어머니가 아팠고 북한에서는 의료기술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이곳 모스크바로 와서 요양 치료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 김정일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는 삼갔으나 매우 엄격한 분이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비추었다. 그래서 자신은 어머니가 그리울 때마다 가끔 모스크바에 와서 2주~한달 정도를 체류한다고 했다. 당시 김정남은 어머니 성혜림을 보러 자주 모스크바를 들렀던 것 같다. 모자의 정이 각별했지만 김정남은 폐쇄된 평양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모스크바에 더 정을 느꼈던 것 같다.

    북한의 고난행군은 러시아주재 북한대사관의 모든 이들에게도 상당히 고통을 준 것 같았다. 행색은 당시 모스크바주민뿐만 아니라 제3국 국민들보다 못했다. 가난이 얼굴에 있었고 오직 외화벌이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모든 비즈니스에 관여했다. 심지어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만난 북한인사는 소련시대 레닌훈장을 팔 듯 김일성 배지를 외화벌이를 위해 팔기도 했다.

    모스크바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던 당시 이신욱 교수
    © Photo: 이신욱
    모스크바 대학교 박사 과정에 재학중이던 당시 이신욱 교수

    고난행군은 북한의 지도층 최상부인 김정일 가족들에게도 예외는 아닌듯했다. 먼저 김정남의 행색이 누추했고 대사관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성혜림의 체재비는 전적으로 장성택의 외화벌이에서 충당된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은 가끔 모스크바에 다녀갔는데 한식당의 방을 비밀리에 예약했다.(당시 모스크바에는 북한식당이 없었다.) 장성택의 모습은 영락없는 고려인 아저씨 모습이었다. 장성택은 러시아인들이 쓰는 샤프카를 쓰고 허름한 러시아 외투와 양복바지 차림으로 나타났는데 한인 타운이 있는 호텔 로비에서 김정남과 만나 한식당에서 비밀리에 식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호텔 로비에는 장성택과 김정남 그리고 중학생 1학년 정도로 보이는 (12세~14세) 꼬마가 농구공을 뛰기며 서있었다. 아마도 김정은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김정은의 정확한 이름도 러시아에서 나왔으니까)

    고난행군이라는 어려운 시절, 갖은 고생을 하며 어렵게 외화를 벌어 김정남과 김정은 형제를 유학시키고 먹여 살렸던 고모부 장성택을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잔인하게 처형했다는 뉴스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권력을 혈육도 가족도 나눌 수 없다는 왕조시대의 철칙이 21세기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몹시 안타깝고, 숙청과 죽음을 피해 김정남도 해외를 떠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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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러시아,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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