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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틴, 전쟁 통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부모님의 추억담 들려줘

    푸틴, 전쟁 통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부모님의 추억담 들려줘

    © Sputnik/ Alexei Druzhi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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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루스키 파이오녜르' 잡지에서 대조국전쟁 전쟁에 참전한 아버지 얘기와 전쟁 통에 기적처럼 살아남은 부모님의 얘기를 추억하며 들려줬다.

    군기업에서 일하는 탓에 군소집에서 면제됐던 그의 부친은 오히려 전쟁이 발발하자 공산당 가입과 자원 입대를 신청했다고 한다.

    푸틴의 아버지는 독일군 최접경 지대 유격부대로 투입됐으나, 곧 잠복 사실을 파악한 독일군이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 숲을 샅샅히 뒤졌다. 당시 푸틴 부친은 늪으로 숨어들어가 수시간 동산 갈대 줄기를 통해 숨쉬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가 숨은 장소에서 몇 발작 거리로 독일 병사들이 지나갔다고 한다. 파시스트 접전지로 투입된 총 28명의 소비에트 병사중 4명만이 살아남았고 나머지 24명이 사살됐다.

    그후 당시 봉쇄됐던 레닌그라드 접전지로 파병됐다. 그곳에서 그의 부대는 한 작은 교두보를 오랜 시간 장악하고 있었다. 매우 힘든 전투가 이어졌고 결국 어렵게 지켜낸 교두보는 독일 병사들의 총알받이가 되었다. 지금까지도 땅 속에 총알탄이 박혀있다. 푸틴의 아버지는 그때 부상당해 평생을 파편이 박힌 다리로 살았다.

    푸틴 대통령은 계속해서 전쟁통에 살아남은 어머니 얘기로 이어갔다. 전쟁에서 부상 당해 군병원에 입원한 아버지를 어머니는 매일같이 문병을 다니셨다 한다. 당시는 레닌그라드가 봉쇄돼 배고픔이 찌든 시대였다. 그때 부모님에게는 3살된 남자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방문하면 배급받은 식량을 의사들, 간호사들 몰래 내줬다. 숨겨온 식량을 어머니는 집으로 가져가 아이를 먹이곤 했다. 그후 아버지는 영양실조로 실신했다 한다. 그러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어머니 병원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후 어머니는 아이마저 국가로부터 빼앗겼다. 어린 아이들을 배고픔에서 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정부는 봉쇄된 레닌그라드 마지막 대피소였던 고아원으로 아이들을 따로 모았다. 아이들의 부모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었다. 어머니 품을 빼앗긴 아이는 그곳에서 앓다가 사망했다 한다.

    아이를 빼앗긴 채 혼자 남게 된 어머니를 보기 위해 군병원의 허락을 받아 아버지는 목발 짚은 채 집으로 향했다. 집이 가까워오자, 건물 입구에서 시체를 옮기는 장면을 보게 됐다.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보기에 어머니는 숨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에서 죽을거라는 사람들의 말을 뒤로 한 채, 아버지는 목발을 짚은 채 어머니를 안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때 회생한 어머니는 1999년도까지 살았다. 아버지는 1998년 말에 돌아가셨다.

    레닌그라드 봉쇄가 끝나고 부모님은 조부의 고향인 트베리로 이사갔다. 전쟁 끝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아버지에게 6명의 형제들이 있었는데 전쟁터에서 5명이 사망했다. 엄마 친척들도 사망했다. 푸틴 대통령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이였다. 어머니 나이 41세에 그를 낳았다.

    당시 러시아는 가족중에 죽은 이가 없는 가족이 없을 정도로 비극적 삶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푸틴의 부모님들에게는 적에 대한 미움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푸틴은 ‘놀라운 일'이라며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도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푸틴의 어머니는 '왜 독일 병사들을 증오해야 하냐'며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로 전선에서 죽었다'고 '의지와 상관 없이 전선으로 내몰린 이들일뿐'이라고 했다.

    러시아 대통령은 이 말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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