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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남긴 유물

    리콴유 싱가포르 초대 총리가 남긴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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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가포르 초대 총리를 엮임한 리콴유 전 총리가 월요일 92세 나이로 별세했다. '싱가포르 모델'이라는 말이 생길정도로 근대적인 싱가포르를 건설하는데 끼친 그의 공로에 대해 안드레이 카르네예프 모스크바국립대 아시아, 아프리카국 연구소 부소장이 조명했다.

    리콴유 총리는 싱가포르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큰 획을 그으며 20세기 위대한 국가 지도자 대열에 합류했다. 죽기 전까지 그는 싱가포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2011년까지 '수석 총리'직을 엮임하며 정기적으로 언론과 포럼, 회의 및 책에서 여러 문제에 대해 정치적 식견과 경험을 풀어놨다.

    리콴유는 런던경제학교(LSE)에서 법학 학위를 마치고 1950년 영국에서 귀국후 즉시 정계에 들어가며 35세 나이에 싱가포르 초대 총리직을 맡았다. 당시 싱가포르는 여러 문제에 부딪히며 국가 존재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었다.

    리콴유는 내세운 과제들을 타협하지 않고 집요하게 해결해나갔다. 인민행동당의 총재를 엮임했던 권위적 리더쉽을 발휘해 철의 의지로 야당의 강경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가 통치의 진보를 이룬 인물이다.

    수십 년간에 걸쳐 그는 러시아를 포함해 CIS, 중국에서 유명 인사다. 많은 정치활동가들과 학자들은 싱가포르가 이룬 기적이 아시아 뿐 아니라, 포스트소비에트 국가들에 있어 선진화된 서구 모델보다도 더 적합할거라 추천한다.

    싱가포르의 매력은 GDP 5만 달러라는 높은 경제 성장뿐 아니라, 수십 년간 여당(인민행동당) 통치 아래 수준 높은 정치적 안정을 이룬데 있다. 싱가포르의 경험을 답습하고자 하는 이들은 특히 천연자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일군 역동적 경제성장과 고도의 사회복지수준, 뇌물이 통하지 않는 사회, 잘 개발된 법안, 정부의 효율성, 투명성 등에 귀추를 주목한다.

    한편 다수 전문가들은 냉전시대에 총리직으로서의 그는 상당히 반공 진영에 있었으며 대외 정치에 있어 지역내 미국과 서구의 요새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국가 통치자로서 연관된 리콴유의 삶과 운명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시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연구, 논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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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콴유, 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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