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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탈린그라드' 영화

    제2차 세계대전 전환점 '스탈린그라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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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여 일 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계속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름하여 스탈린그라드 전투(Battle of Stalingrad)다.

    승리의 댓가로 구소련이 지불한 것은 수십만의 사상자와 완전히 파괴된 볼가 도시였다. 그러나 이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완강하게 버틴 붉은 군대 덕분에 수백만명의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유명한 '스탈린 지령 227'는 이렇게 적고 있다. "도망가지 마라. 한발짝도 물러서지 마라'

    이 전투에서 독일군이 쓴 일기를 보자. "어디서 이 러시아인들이 나타난 것일까. 곡물창고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면 바닥에서 불길이 번졌다. 몇명인지 알 수 없는 소련군은 쥐처럼 곡물창고를 지키고 있었다. 전투가 끝난 후에야 우리는 알게 됐다. 발견한 시신은 고작 18구였다. 2주간 단지 18명을 잡기 위해 350명에서 700명 가량 되는 부대 병사들이 그 작은 창고 안에서 근접전을 벌인 것이다. 독일 군이 쓴 일기 속의 이 문장은 스탈린그라드 병사들의 사기와 강인함을 상징한다. 히틀러 부대가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를 공격했을 때 그들은 이렇듯 치열하게 저항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스탈린그라드 탈환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연결망 차단과 카프카스 유전을 점령하는데 있었다. 그런데 병사들과 민병대간에는 다른 목적이 공존했다. 바로 독일 군부대의 적진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스탈린그라드전투' 박물관 세르게이 모르드비노프 부관장은 말한다.

    1943년 2월 2일 스탈린그라드 독일 진영은 완전히 파괴됐다. 재6 야전베르마흐트 부대는 강한 적군에 의해 완전히 참패했다. 일반적으로 스탈린그라드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유럽과 베를린에서 시작된 나치즘과 그의 추종자들이 완전히 몰락하는 주요한 기점이 됐다.

    "스탈린그라드전투는 규모면에서 이 전의 모든 전투를 능가하는 대규모 전쟁이었다. 전투는 볼가와 돈강 사이 10만 ㎢에서 펼쳐졌으며 2백만명 이상이 희생됐다. 1942년 9월 이미 시가전이 벌어졌다. 주거 건물은 완전히 파괴됐다." 드리트리 벨로프 스탈린그라드 전투 국제 펀드 부이사장의 설명이다.

    지하 시설물을 제외하고 도시는 완전히 잿더미가 됐다. 사람들이 거주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십여채의 건물이 남아있었지만 이는 독일군이 추위를 피하는 등 참호로 사용한 것들이다. 독일군에 점령되지 않은 유일한 지역은 키로프 마을로 이곳에는 2만2천여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독일군은 베케토프크 지역을 폭격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그들은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하기를 휘망하면서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기 때문에 어떠한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겨울은 지나가지 않고 그들 앞에 멈춰 섰다. 독일군은 1943년 2월 2일 최종적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수십만의 붉은 군대 병사들은 영웅이 됐다. 100여 군인들이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70만명의 군인들이 스탈린그라드 방위 메달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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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승전기념행사, 러시아, 볼고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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